본문 바로가기
프랑스문학

『악셀』 모더니즘의 기원으로 - 빌리에 드 릴-아당 희곡

by 북페스트 2026. 6. 27.

장-마리-마티아-필리프-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아당 백작(Jean-Marie-Mathias-Philippe-Auguste, comte de Villiers de l'Isle-Adam, 1838~1889)은 브르타뉴의 생-브리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으나(그 기원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재정 형편은 늘 빈궁했다. 아버지는 몰타 기사단의 잃어버린 보물을 찾는 데 집착했는데, 그 망상적인 탐색이 훗날 『악셀』의 지하 보물 모티프로 변형되어 나타났다는 점은 흥미롭다. 빌리에는 1860년 파리에 정착해 문학계에 뛰어들었고, 보들레르를 만나 포의 작품을 권유받았다. 이 두 이름—포와 보들레르—이 그의 문학적 뼈대를 형성했다.​

폴 베를렌은 그를 '저주받은 시인들(poètes maudits)' 중 하나로 꼽았다.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작품은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만 읽혔다. 1883년 단편집 『잔혹한 이야기들(Contes cruels)』이 처음으로 폭넓은 주목을 받았고, 1886년 소설 『미래의 이브(L'Ève future)』로 '안드로이드(androïde)'라는 단어를 문학에 정착시켰다. 그러나 그가 필생의 역작으로 여긴 작품은 따로 있었다. 20년에 걸쳐 집필하고도 끝내 미완성인 채로 세상을 떠난 희곡 『악셀』이 그것이다.​


20년의 집필, 그리고 유고 출판​

빌리에가 『악셀』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69년경이다. 동시대 전기 작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숭배했던 리하르트 바그너와 만난 것이 이 작품의 결정적인 계기였다. 바그너는 그에게 현실을 묘사하는 대신 이상적인 세계를 창조하라고 조언했다. 빌리에는 그 조언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이후 20년 동안 이 작품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1885~1886년 문예지 『죈 프랑스(Jeune France)』에 일부를 발표했으나 전체는 완성하지 못했다.​

1889년 8월 19일, 51세의 빌리에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실제로 빌리에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교정지를 계속 직접 검토하려 했고, 1889년 3월 11일 출판사 캉탱의 직원 말레르브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직접 교정지를 돌려보내고 있다고 섰다. 교정지의 3분의 1만을 직접 보고 수정했다. 나머지는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등에게 맡겼다. 유고를 정리해 출판사 캉탱(Quantin)을 통해 1890년 1월에 펴낸 것이 지금 우리가 읽는 『악셀』이다.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했다.

네 개의 세계, 하나의 거절

무대는 1828년 독일. 작품은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제1부 '종교적 세계(Le Monde religieux)', 제2부 '비극적 세계(Le Monde tragique)', 제3부 '비의적 세계(Le Monde occulte)', 제4부 '정념의 세계(Le Monde passionnel)'다. 각 부는 단순한 막(幕) 구분이 아니라 인간이 매달릴 수 있는 삶의 방식—신앙, 세속적 야망, 비의적 지식, 사랑—을 차례로 제시하고 차례로 거절하는 구조다.​

제1부는 성 아폴로도라 수도원에서 열리는 성탄절 전야로 시작된다. 귀족 상속녀 사라 드 모페르(Eve Sara Emmanuèle de Maupers)가 수도 서원을 앞두고 있다. 대수도원장이 묻는다. '빛과 희망과 삶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사라는 '아니요'라고 답한다. 수도원에서 탈출한 사라는 이후 슈바르츠발트(검은 숲) 깊은 곳에 자리한 오어스페르크 성으로 향한다. 그 성에는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막대한 보물이 지하 납골당 깊이 묻혀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제2부에서는 악셀의 사촌 카스파르 대령이 보물을 함께 찾자며 악셀을 부추긴다. 악셀은 거절한다. 두 사람은 결투를 벌이고, 악셀이 카스파르를 죽인다. 세속적 야심과 물질적 욕망의 세계를 상징하는 카스파르의 죽음으로 제2부가 끝난다. 제3부에서는 악셀의 스승 마에스트로 야누스(Maître Janus)—장미십자회(Rosicrucianism)의 신비 입문자—가 악셀에게 비의적 지식의 최고 단계를 전수하려 한다. 그는 묻는다. '빛과 희망과 삶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악셀 역시 '아니요'라고 답한다.​

이 반복되는 거절—사라의 거절과 악셀의 거절이 동일한 물음에 대한 동일한 답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작품의 핵심 구조다. 제4부에서 두 사람은 지하 납골당에서 처음 만난다. 사라가 보물을 찾아 악셀을 공격하고, 싸우는 중에 서로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격렬한 사랑에 빠진다. 사라는 그 보물로 세계를 여행하자고 꿈꾼다. 악셀은 더 급진적인 논리를 내세운다. 지금 이 순간의 환희가 삶의 어떤 경험보다도 숭고하다면, 삶은 이 순간을 끝없이 훼손할 뿐이라고. 그의 유명한 대사가 여기서 나온다. ‘산다는 것? 하인들이 우리 대신 살아갈 것이오.’ (Vivre? Les serviteurs feront cela pour nous).' 새벽이 되기 전, 두 사람은 보물 더미에서 꺼낸 보석 잔에 독을 마시고 함께 죽는다.​

상징주의 드라마의 정수​

1885~1886년은 말라르메, 베를렌, 빌리에를 중심으로 한 문인 집단이 '상징주의(symbolisme)'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다. 『악셀』은 그 운동의 기치 아래 집필된 작품이 아니라, 운동보다 먼저 시작된 작품이 사후에 그 정점으로 인정받은 경우다. 번역자 마릴린 개디스 로즈(Marilyn Gaddis Rose)는 이 작품을 가리켜 '상징주의 희곡의 완벽한 전형(the Symbolist play par excellence)'이라 불렀다.​

작품의 영향 관계는 명확하다. 빅토르 위고의 낭만주의 연극, 괴테의 『파우스트』,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극이 그 세 기둥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 작품을 '바그너적인 주제와 규모를 갖춘, 상징주의와 오컬트 주제를 결합한 드라마 산문시'로 규정한다. 실제로 『악셀』의 구조는 바그너 오페라의 형식을 닮았다—각 부(部)는 마치 악극(樂劇)의 막처럼 자족적이면서도 전체를 향해 수렴한다. 드뷔시가 1890년 이 작품을 오페라로 작곡하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이 이미 스스로 음악극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일랜드 시인 W. B. 예이츠는 이 작품의 1925년 영역본에 서문을 썼다. 그는 빌리에를 두고 '영혼의 불꽃이 빛나는 동방의 등불처럼, 짙은 청색과 붉은 유리 너머로 정신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발하는 말들을 한데 끌어 모은 작가'라 평했다. 예이츠 자신의 상징주의 시학에서 빌리에의 영향은 직접적이었다. 『악셀』의 반물질주의, 현실 거부, 이상의 절대화는 예이츠가 아일랜드 민족시 속에 불어넣고자 했던 신비주의적 충동과 공명했다.​

악셀의 성: 모더니즘의 기원으로​

『악셀』이 20세기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결정적으로 확정한 것은 미국 비평가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의 저서 『악셀의 성: 1870~1930년의 상상적 문학 연구(Axel's Castle: A Study in the Imaginative Literature of 1870-1930)』(1931)다. 윌슨은 이 책에서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의 기원과 전개를 추적하고, 그것이 예이츠, 폴 발레리, T. S. 엘리엇,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거트루드 스타인 등 20세기 모더니즘 작가들에게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논증했다. 책 제목은 바로 빌리에의 이 희곡에서 가져온 것이다.

윌슨의 논지에서 『악셀』은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었다. 그에게 악셀이라는 인물은 상징주의 영웅의 원형—'일상적 삶에 투쟁하며 자리를 만들기보다는 그 삶에서 탈락하기를 선택하는'—이었다. 이 탈락의 미학은 상징주의가 자연주의 문학과 구별되는 본질적 지점이기도 했다. 자연주의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했다면, 상징주의는 현실로부터 물러서 내면과 이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악셀의 죽음은 그 극단적 표현이다. 삶보다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현실보다 이상이 더 진실하다는 명제를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상연 불가능한 텍스트의 역설​

『악셀』은 희곡이지만 연극적 관습을 의도적으로 위반한다. 독백과 대화는 수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며, 무대 지문은 그 자체로 산문시에 가깝다. 브리태니커는 '완전본으로는 상연 불가능한 작품'이라 명시하며, 1962년에 4시간 버전으로 재공연된 사례를 언급한다. 번역자 개디스 로즈는 빌리에가 상징주의적 주제들을 모두 끌어모아 최대 강도로 밀어붙인 나머지, 오히려 연극적 효과보다 학문적 실증 자료에 가까운 작품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 역설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다. 『악셀』은 무대 위에서 실현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읽힘으로써 작동하는 텍스트다. 아서 사이먼스(Arthur Symons)는 『문학의 상징주의 운동(The Symbolist Movement in Literature)』에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인간이기도 하고 인간보다 덜하기도 한' 존재들이며, 각각 다른 이상—종교적 이상, 오컬트적 이상, 세속적 이상, 정념의 이상—의 화신임을 지적했다. 그들은 사실주의 드라마의 인물처럼 살아 숨쉬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세계관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다 소멸한다.

세기말의 거울​

파리의 고서 전문점 클라브뢰유(Clavreuil)의 해설은 이 작품이 체현하는 세기말적 세계관을 정확히 짚는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Les Fleurs du Mal)』, 위스망스의 『거꾸로(À rebours)』, 바르베 도르빌리의 『악마들(Les Diaboliques)』과 함께, 『악셀』은 19세기 마지막 20년의 환멸적 분위기를 공유한다. 현실 세계는 이상에 언제나 미치지 못한다. 삶은 꿈을 배반한다. 이 테마는 이미 낭만주의에 있었으나, 빌리에는 그것을 논리적 결론—자발적 죽음—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서 더 극단적이다.​

주인공 악셀 드 아우어스페르크(Axël d'Auersperg)는 바이런적 영웅의 프랑스적 변주다. 슈바르츠발트 깊은 곳의 성에 칩거하며 연금술과 장미십자회 비학에 몰두하는 이 인물은, 부르주아적 현실 질서를 경멸하는 동시에 그 어떤 현실적 대안도 수용하지 않는다. 종교도 거절한다. 세속적 야망도 거절한다. 오컬트의 입문도 거절한다. 마지막으로 삶 그 자체도 거절한다. 이 연쇄적 거절이 작품의 서사적 뼈대다.​

한편 사라(Eve Sara Emmanuèle de Maupers)는 수동적인 상대역이 아니다. 그녀는 수도원을 탈출하고, 성채를 침입하고, 주인공에게 칼을 겨누는 능동적 존재다. 하지만 그녀 역시 악셀의 논리에 설득당해 함께 독을 마신다. 아서 사이먼스의 분석대로, 악셀과 사라는 남성 원리와 여성 원리의 화신으로서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도, 동일한 결론—현실 거부—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관념이 두 몸에 깃든 형상이다.​

『악셀』을 한국어로 읽는다는 것​

『악셀』의 영역본은 세 가지가 알려져 있다. H. P. R. 핀버그(Finberg) 역(1925, 예이츠 서문 수록), 마릴린 개디스 로즈 역(1970, 더블린 돌멘 프레스), 준 기샤르노(June Guicharnaud) 역(1970, 프렌티스-홀)이다. 스페인어 번역은 2018년 문두르카메르(Wunderkammer) 출판사를 통해 나왔다. 이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번역이 쉽지 않은 이유는 빌리에 특유의 문장 때문이다—만연체의 장엄한 산문, 신학 용어, 연금술 및 장미십자회 비학의 어휘, 오페라적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리는 호흡이 뒤섞여 있다.​

작가는 자신이 세기말 문학의 시대정신을 대표한다고 자부했고, 비평사는 그 자부심을 뒤늦게나마 인정했다. 생전에는 소수의 문인들에게만 읽혔으나, 사후에 말라르메와 위스망스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상징주의 문학의 성전(聖典)으로 자리잡았다. 에드먼드 윌슨이 20세기 모더니즘의 계보를 쓰면서 이 성채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삼은 것은, 『악셀』이 단순한 프랑스 문학의 유산이 아니라 서구 근대 문학 전체의 분기점에 놓인 작품임을 공인한 것이다.​

『악셀』을 한국어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프랑스 문학을 수입하는 일이 아니다. 근대 한국 문학은 일본을 경유해서 프랑스 상징주의의 세례를 받았다. 김소월의 상징적 시어, 이상의 해체적 글쓰기, 현대 시인들의 이미지즘적 언어, 김춘수의 꽃 등, 그 계보의 맨 위쪽 어딘가에 말라르메, 베를렌, 그리고 빌리에 드 릴-아당이 있다. 『악셀』을 읽는 것은 그 계보의 원천에 직접 닿아 보는 일이다.​

삶보다 순수한 것을 향하여​

악셀이 사라에게 건네는 마지막 설득은 단순한 염세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 이상을 배반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 위에 세워진 미학적 논리다. 여행을 하고, 보물을 쓰고, 세계를 누빈다 해도, 지금 이 순간 둘 사이에 존재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감각보다 그 삶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잠재성이 현실화되는 순간 순수함을 잃는다면, 차라리 잠재성의 상태에서 영원히 멈추는 것이 더 진실하다는 논리다. 이 역설적 결론이 19세기의 독자에게도 충격이었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날카롭다.​

20년에 걸쳐 쓰고도 미완성으로 남긴 작품, 교정지를 절반밖에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둔 작가, 친구들의 손으로 완성된 유고—『악셀』의 출판 경위 자체가 이 작품의 주제를 닮았다. 빌리에는 삶이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이 작품 안에서만큼은 그 이상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산다는 것? 하인들이 우리 대신 살아갈 것이오.’ 이 문장은 19세기 유럽 문학이 도달한 가장 차가운 극점 중 하나다. 그리고 동시에, 그 차가움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 Wikipedia (Axël 항목), Britannica, Books & Boots 비평, Librairie Clavreuil 해설, Arthur Symons 『The Symbolist Movement in Literature』, Edmund Wilson 『Axel's Castle』(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