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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문학

욕망의 모호한 대상 - 피에르 루이스, 19세기를 살았던 21세기 작가

by 북페스트 2026. 6. 26.

피에르 루이스Pierre Louÿs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지막 철자 's'를 발음할 때면 분노에 휩싸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결국 성을 갈아치우기로 한다. 그래서 루이스를 루이로만 발음하게끔 철자 i 를 y로 바꾸고 그 위에 점까지 두 개를 찍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루이스라 부른다. (Pierre Louÿs)

피에르는 감각적인 사람이었는데 특별히 감각적이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사랑은 감각의 시'라 썼던 보들레르의 제자가 말라르메라면 말라르메의 제자는 피에르 루이스다. 그러나 루이스는 마치 감각이야말로 사랑의 시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감각은 시적 상상력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몸은 감각을 실현하는 감각기계가 되었다. 감각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 중의 하나가 시가 되었고, 소설이 되었고, 익살과 풍자가 되었다. 거기엔 윤리나, 생의 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 윤리와 동의어인 세상에서 감각이라니. 관능의 감각이라니.

피에르 루이스는 관능의 삶을 살았다. 그는 색정광이었다. 조심스럽다. 독자들이 이 단어에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지 궁금하다. 누군가가 색정광이라 알려지면 그 사람의 책을 선택할 확률이 높을 것인지 현저하게 줄 것인지 알 수 없다. 성에 대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극렬하게 불화하는 우리 사회에서 사드의 작품도,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도 다들 읽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출판사가 대놓고 이 사람들을 색정광이라 칭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9세기 어느 색정광의 빛나는 소설, 이런 문구는 본 적이 없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원제는 여인과 꼭두각시)>은 피에르 루이스 사후에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발간된 세기의 걸작, 수잔 손탁이 포르노그라피의 예술적 성과라 평가한 <세 자매와 어머니>, 그리고 하드코어에 가까운 풍자집 <어린 소녀들의 가정교육 지침서> 와는 다르게 그의 생전에 매우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서 출간되고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대표되는 소설이다.


피에르 루이스 전문가 장 폴 구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피에르 루이스는 섹스의 끝이 어디인지 느끼고 싶었다. 인간의 성생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섹스에 몰두했다. 일상적인 성생활의 모든 측면과 깊이를 경험해보고 싶었고 그것을 시와 사진으로 옮겼다. 상상력은 판타지와는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피에르 루이스의 상상력은 성적 판타지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환상과 상상은 분명 다른 것이다. 환상이 정서적인 측면이라면 상상은 다분히 이성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는 느끼고 상상한다. 자신의 글과 사진, 섹스는 차이가 없다. 상상력의 윤활유일 뿐이다. 그가 이른 나이에 거의 절필했던 이유가 아닐지 짐작해본다. 당시 35만 부라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고도 자신의 존재를 숨기거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피했었다. 사생활을 보호할 수만 있다면 책 따위는 출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평생 읽고 썼다. 사람들은 피에르 루이스를 상상하는 인간이라 수식했다. 

일종의 유희처럼, 말장난처럼, 특정한 분야의 감각에 집중되었으나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가 출현했다. 스타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물들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방식이라 했던 플로베르에 따르면 피에르는 플로베르의 후예다. 물론 발자크의 후예는 아니다. 자신의 단편 소설 <가짜 에스더>(욕망의 모호한 대상)에 발자크를 등장시켰지만.

피에르는 중학교에서 만난 앙드레 지드의 첫 책에 서문을 썼고 두 번째 책에는 표지까지 만들어 줬다. 10대에 이미 수백 편의 시가 그의 노트를 채웠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프랑스 시인들, 말라르메나 베를렌느, 르 콩트 릴 등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청소년 피에르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지드와 피에르 루이스는 몇 년 후 결별하게 되고 평생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앙드레의 성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다. 

피에르가 스무 살 즈음에 지드와 함께 런던으로 가서 오스카 와일드를 만난다. 오스카는 피에르를 무척 좋아했다. 연정을 품은 건 아니었다. 오스카가 자기 희곡 살로메를 피에르에게 헌정했지만 이년 후에 피에르는 오스카에게 엄청난 실망을 하고 떠나게 된다. 오스카의 호텔에 침대 하나에 배게 두 개, 그리고 앨프리드 더글러스가 있다는 것을 피에르는 용납하지 못했다. 오스카는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 나는 단지 친구를 원할 뿐인데 참 어렵군, 그럼 나는 연인만 있을 팔자인가…." 슬픈 이야기.

피에르 루이스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걸까? 자기는 사포를 그렇게 좋아하고 레즈비언 이야기를 시로 써서 당대의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면서,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건 되고, 남자와 남자는 안 된다는 것. 피에르 루이스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가지 더, 피에르와 드뷔시 사이의 우정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그리스 레즈비언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시 <빌리티스의 노래> 중 3편에 드뷔시가 곡을 붙였다. 몇 년 후엔 이 둘의 관계도 끝나는데 이유는 드뷔시가 바람을 피워 부인과 이혼하고 젊은 여자에게 가버리자 피에르가 분노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피에르의 보수주의적 기질은 당시의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프랑스를 완전히 양쪽으로 쪼갠 그때 반 드레퓌스 진영에 있었다. 

피에르는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할 시기에 주변과 절연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그리스 고전문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던 중에 당대의 유명한 논쟁을 촉발한다. “몰리에르는 코르네유 최고의 걸작”이라는 표절 논쟁. 시인이자 소설가, 고대 그리스 문학 전문가였고 10여 개의 외국어, 무려 중국어도 할 줄 알았던 이 르네상스인에게 글쓰기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는데, 그건 즐거움도 아니고 고통도 아니고, 뭔가 대단히 올바른 주장을 펼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자기 성찰도 아니면서, 성장은 더욱 아니었고, 그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결코 아니었으며, 특별한 이유, 써야 할 이유가 있거나 혹은 그런 이유를 애써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느끼는 감각, 그걸 표현하고 싶다는 유일한 소망은 있었겠지만. 결국 쓰는 건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쓰는 게 삶이 되면 그런 삶은 참 가엾은 삶이 될 지도 모른다.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등장

피에르 루이스는 벨에포크라 불리우는 시대의 공동(空洞)이라 할 수있다. 그 공동에서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언어가 출현한다. 보들레르의 시대이자 드레퓌스의 시대, 부르주아지에 절대 자유가 허용되던 시대이자 교회와 전통이 완강한 지배를 행사하던 시대, 극단의 쾌락과 엄격한 도덕이 서로를 떠받치며 음습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던 시대, 가장 평등한 시대이자 최악의 불평등 시대, 바로 벨 에포크라 불리는 황금기. 그 황금기에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피에르 루이스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능적인 감각. 

소년기에 이미 수백 편의 시를 쓰고 상징주의와 고답파의 내로라하는 시인들 속에서 성장한 그에게 쓰기는 하나의 쾌락에 속했을 것이다.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등장은 그 쾌락의 결과물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그가 평생 집착했던 사진, 그리고 실제로 경험하는 관능적 쾌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피사체, 곧 여인을 바라보고 묘사하고 느끼며 이미지를 수집했다. 여러 필명을 쓰거나 자신의 창작품을 번역작이라 발표할 정도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자신이 거둔 당대의 거대한 문학적 성공조차 부담스러워했고 종국에는 작품을 발표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레즈비언의 사랑이나 육체적 관능에 집착한 시와 소설은 고대 그리스 문화와 신화적 세계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과 어우러질 뿐 당대의 도덕과 관습에 대한 전복적 상상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포 시대에 레즈비언 소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산문시로 문학적 파란을 일으켰으나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피에르 루이스는 사후에 출간된 소설 <<세 자매와 어머니 Trois filles et leur mère>>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포르노그래피 작가로 추앙받는다. 수전 손택은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와 더불어 성애문학(?)의 빛나는 성과라 언급하기도 했다.

작품의 출판이 좌절되거나 사후에 출간되었을 만큼 당시의 도덕관념에서는 쉽사리 허용되지 않을 소재에 집착한 피에르 루이는 프랑스 국민을 양분했던 드레퓌스 사건에서 왕당파와 교회가 주도한 반드레퓌스 진영에 속한 보수주의자였다. 세기말의 어두운 그림자나 다가올 전쟁에 대한 불안, 현실의 추악함이나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 또는 역사의 진보는 그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본 세계는 고대 그리스 시대였고 지금 이 ‘아름다운 시대’의 모순은 그를 자극할 수 없었다. 그는 직관적으로 쓰고 사진을 인화하고 피사체를 경험하는 감각으로 한 시대의 문학적 성과를 달성한다. 

종이책 품절 전자책만 현재 있습니다

감각이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는 시기, 곧 그에게서 현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넘쳐나는 감각은 자의식을 압도하거나 혹은 휘발시켰다. 관능의 매개이자 피사체일 뿐인 여성을 향한 끝없는 갈망과 관능을 문자와 사진 이미지로 붙잡고 그 대상을 느끼며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시도였으므로 감각과 피사체를 향한 강박은 더욱 강화되고, 그만큼 더 피사체에 집착하는 악순환으로 빠져들어 자신에게 무감해지고 자신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피에르 루이는 말년을 그렇게 보냈다.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주제로 그린 삽화

이 소설 <<욕망의 모호한 대상 La femme et le pantin>>은 한 남자의 집착과 그를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의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종당하고 기만당하는 남자는 단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침범해 들어가고자 한다. 이는 남자가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이해 불가의 영역인 여성(타자)의 내부를 향한 맹목적인 갈망이자 집착이리라.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성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시대’가 만들어낸 무중력의 세계. 거기에 피사체를 향한 맹목적인 시선, 타인을 통해 자기 내부로 들어가려는 현대적 열망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욕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녀의 눈과 손가락은 더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온몸이 하나의 얼굴처럼, 얼굴 그 이상으로 풍부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얼굴은 마치 쓸모없는 물건처럼 어깨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갈라진 엉덩이에 미소가, 물결치는 허리엔 두 뺨의 홍조가. 그녀의 가슴은 두 개의 커다랗고 검은 눈처럼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욕망의모호한대상)

피에르 루이스Pierre Louÿs

1870-1925 프랑스 시인, 소설가.

10대에 이미 수백 편의 시를 쓴 피에르 루이스는 고답파와 상징주의 시인들의 문학 모임에 참여하며 말라르메, 르콩트 드 릴 등 당대 거장들의 영향 아래 고대 그리스 문화와 고전 미학에 매료된 첫 시집 <아스타테(1892)>를 스물두 살에 발표한다. 

이어 잡지 ‘라 콩크’를 창간하여 무명의 폴 발레리 등 젊은 시인들을 위한 무대를 제공한다. 그즈음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살로메>를 피에르 루이스에게 헌정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소재인 고대 그리스 소녀의 동성애와 삶을 기록한 산문시 <빌리티스의 노래(1894)>로 큰 성공을 거둔다. 후에 친구인 드뷔시가 세 편의 시에 곡을 붙였다. 

출간 당시, 피에르 루이스는 이 시집을 고대 그리스 시의 번역본이라 소개하여 전문가들조차 속았지만, 결국 피에르 루이스의 창작임이 드러났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궁중 생활을 그린 소설 <아프로디테(1896)>는 35만 부가 팔리는 막대한 성공을 거두며 플로베르 이후 가장 완벽한 프랑스어 산문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썼던 것처럼 예술, 아름다움, 완벽성의 숭배,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애착은 풍부한 상상력과 어우러져 환상을 풀어놓고 언어와 유희하며 유머, 패러디, 패티시, 그리고 관능과 성애의 깊은 탐닉이 어우러진 가장 세련된 프랑스어 산문을 역사에 남겼다. 

2012년 피에르 루이스의 극도로 대담하며, 세련된 에로티시즘의 정수가 [피에르 루이스의 에로틱 선집]으로 출간되었다.

*종이책 품절 전자책

 

 

 

욕망의 모호한 대상 | 피에르 루이스

소설 속 남자는 여자의 모순적인 두 얼굴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종당하고 기만당하지만 단 한 번도 침범당하지 않은 여자의 몸으로 침범해 들어가고자 한다.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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