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단순히 영화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 아니다.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운동과 시간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발명품이 소리와 색채를 얻고 자본과 결합하여 리바이어던 같은 거대산업이 되기까지, 노동과 기술의 결합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의 생산품이 무한복제의 수익상품, 심지어 신식민지화의 대표상품이 되기까지, 렌즈를 통과한 빛이 만들어내는 현상이 삶과 세상을 읽는 철학이 되고 예술이 되고 가장 강력하게 대중을 사로잡는 이야기의 매체가 되기까지, 그 다채로운 영화의 정체성을 해부하고 복잡한 진화의 과정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영화의 역사를 이렇게 넓고 깊게, 이처럼 다층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책은 한국은 물론이고 저자 자신이 공부한, 영화를 발명했던 프랑스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김성태의 『영화의 역사』는 감히 기념비적인 역작이라고 할 만하다. 마침내 우리는 영화를 이해하고 사유하기 위해 서가 한쪽에 꽂아두고 언제나 찾아볼 수 있는 영화 관련 참고서를 한 권 얻게 되었다.

영화를 미치도록 사랑한 한 인간의 고백이 이 책 안에 있다. 영화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열병을 앓고 응답 없는 신호에 낙담하고 영화와 현실을 구분 못 한다는 주변과의 불화에 홀로 갈 곳 몰라 우두커니 멈춰서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영화로 받은 상처를 사랑으로 갚아줬다. 그렇게 영화를 붙들고 버텨낸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부터 구원받고자 했던 절박한 사랑이 문장마다 묻어난다. 이 책은 영화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삶을 견디기 위해 영화를 선택한 한 인간의 진심 어린 기록이다. 이 절절한 고백은 때로는 삶보다 더 진실했던 영화들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이자, 아직 영화로 위로받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연서다. 극장에 가면 항상 상훈이 형이 있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영화를 사랑했다. 이것 말고 영화를 사랑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김지운 영화감독)

이미지란 무엇인가?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는 존재하는가? 영화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영화의 형식 자체, 몽타주, 롱테이크, 플랑-세껑스, 데꾸빠쥬가 어떻게 존재성을 획득하는지 자세히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저자 김성태는 영화가 단순히 ‘무엇을’ 보여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존재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관객의 시선을 조직하고 현실을 분절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세계의 존재 조건 자체를 바꾸는 기술적-미학적 개입으로 읽힌다. 영화는 보는 이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의미는 관객과의 관계 안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영화가 단지 ‘표현된 존재’가 아닌, ‘관계적 존재’로 이해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시인이자 음악가인 강정이, 세상의 빛보다 어둠에서 더 선명하게 타오르는 영화들의 초상을 써 내려간다. 영화가 남긴 진동과 침묵을 붙잡는 시인에게 영화의 모든 장면은 몸으로 기록된다. 꿈처럼, 혹은 고백처럼. 그에게 영화란 체험에 가깝다. “영화는 망상의 거울이고, 그 거울은 결국 나 자신이다.” 그는 스크린 위 죽지 않는 영혼들의 이야기 속에서 ‘죽지 않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투사하는지도 모른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시작으로, 줄랍스키의 〈포제션〉,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를 비롯해 유럽과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들 그리고 한국 영화 〈발레리나〉를 거쳐 마침내 〈조커〉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택한 영화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어둠의 이야기들이다.
“세상에도,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어둠’은 항상 존재한다는 근본 사실을 상기”하며 그 어둠 속에서 인간 존재의 상처, 욕망, 구원, 사랑을 시인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다. 독자는 어느 순간, 스크린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시적인 비평서가,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영화적인 시집이 될 것이다.

김성태 저자의 『뱀파이어, 이미지에 관한 생각』(불란서책방, 2024)은 뱀파이어와 영화가 '이중적 질료성'이라는 공통 속성을 지닌다는 독창적 시각으로, 공포와 매혹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통해 영화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중적 질료성"은 김성태의 책에서 핵심 개념입니다. 쉽게 말하면, 뱀파이어와 영화는 둘 다 "실체가 없지만, 특정 조건을 만나면 잠깐 존재를 얻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낮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밤이 되면 육체를 입고 나타납니다. 영화 속 인물은 현실에 없는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 관객은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둘 다 "허구 속 존재"이면서, 특정 조건(밤/스크린)을 만나야만 비로소 질료, 즉 몸·실체를 얻는다는 점이 같습니다. 이게 바로 이중적 질료성의 핵심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객과 뱀파이어의 관계를 "흡혈"에 빗댑니다. 뱀파이어가 인간을 자신의 최면 속으로 끌어들이듯, 영화도 관객을 스크린 앞에 붙들고 현실감을 이식합니다. 그래서 "뱀파이어는 영화 자체이고, 관객은 흡혈의 대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 이중적 질료성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개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꽤 정교한 '존재론적' '주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철학에서 질료(質料)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형상을 받아들이는 재료"를 뜻합니다. 조각상으로 치면 대리석이 질료이고, 그 돌에 새겨진 형태가 형상(形相)입니다. 그런데 뱀파이어와 영화는 질료가 두 겹으로 작동합니다. 평소에는 질료가 없는 순수한 관념(이야기, 이미지)으로 존재하다가, 특수한 조건이 주어지면 일시적으로 질료를 얻어 현실에 침투합니다. 이 "이중성"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핵심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침투가 완전한 현실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비치지 않고, 햇빛을 받으면 사라집니다. 영화 속 인물은 관객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다시 스크린 안으로 돌아갑니다. 둘 다 현실을 넘나들되, 결코 완전히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경계에 머무는 존재"라는 특성이 두 존재를 더욱 묶어 줍니다.
또한 저자는 "매혹"이라는 공통점도 강조합니다. 뱀파이어는 공포스럽지만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스크린 위의 이미지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울고, 웃고, 공포에 떱니다. 이 "알면서도 속는" 자발적 취약성이 흡혈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입니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론입니다. 뱀파이어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왜 어두운 극장에 앉아 낯선 이야기에 감정을 내어주는지, 왜 허구인 줄 알면서도 스크린 앞에서 무력해지는지 — 그 불가사의한 경험의 구조를 "뱀파이어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은 이미 한 번씩 뱀파이어에게 목을 내어준 셈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기꺼이 극장에 앉는다는 사실이, 그 흡혈이 결코 불쾌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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