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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납량특집) <뱀파이어, 이미지에 관한 생각>시리즈

by 북페스트 2025. 7. 17.
납량특집으로
<뱀파이어, 이미지에 관한 생각>시리즈를 시작해봅니다.

 

서문-건너기 전의 다리 이편에서(1)
여기 뱀파이어에 대한 보고서가 있다. 물론, 그 존재에 대해 다룬 훌륭한 책들은 넘쳐난다. 이 보고서는 특이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를 ‘영화’와 이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표기부터 분명하게 해두어야겠다. 영화에 관한 모든 책에서 내가 쓰는 표기는 항상 정해져 있다. 따옴표로 강조한 ‘영화’와 문장부호가 없는 영화이다. 따옴표가 붙은 ‘영화’는 시네마cinema를 지시한다.
우리가 극장에 가서 보는 하나하나의 필름들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고 작동하게 한, 19세기 발명품으로서의 시네마 말이다. 반면, 따옴표 없는 영화는 바로 그 자식인 개개의 서사를 담은 영화들을 말한다. 이 구별, 늘 강조하지만 아주 중요하다. 방식으로서의 ‘영화’와 그 방식이 적용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종종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영화 들을 분석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작동하는 ‘영화’를 분석한다. 그가 그렇게 작동해서 그 영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사실 ‘영화’는 아직도 우리에게 생소한 대상이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개 영화들이며, 어렴풋이 ‘영화’의 작동법도 고려하기는 하지만, 자주, 영화들이 빚어낸 ‘서사’에 그치곤 한다. ‘영화’는 엄밀히 말해, 역사적으로 이제 막 시작한 존재이다. 이제는 백 삼 십여 년 되었는데, 자기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가 자리 잡기 이전의 것들을 따라잡는 일부터 자기의 방식으로 소화하는 일, 거기에 대부분 매달렸다.
그 ‘영화’가 과거의 채무에서 벗어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영화’가 문학이나 회화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펼치는 것은 지극히 최근이다. 우리 인류의 의식 수준에서 잠재적으로 작동하는 문학과 회화 등의 전통 예술은 결과물들과 상관없이 이미 사고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영화’는 자신도 그러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여전히 더디긴 하지만 열심히 채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안에서도 얼마든지 그 시도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부분이었지, 완벽하게 자기 방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화’가 우리를 바라보듯, 관객인 우리가 ‘영화’의 그 시도를 봐 줄 생각이 없으면, 그가 자신을 떳떳하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이 과정에 대해서 묻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방법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고, 기원들을 뒤지지만, 이제 막 시작이라는…. 이 방법을 이해하는 데 ‘뱀파이어’가 관련된다. 아니, 이 무슨 뜬금없는?

 

소재로서의 뱀파이어가 아니다.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지닌 문제인데, 물론 ‘악’의 개념과 긴밀한 끈이 있지만 그처럼 존재의 정체를 파악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하긴 당연히 우리는 뱀파이어를 캐는 이상, 그의 그림자로 작용하는 ‘악’의 역사도 돌아볼 것이다. 하지만 악이란 무엇인가, 뱀파이어란 어떤 존재인가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악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다. 이 세계에 침투했을 뿐이지, 그는 다른 차원의 존재이고 어쩌면 그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와 마주했을 때, 끔찍해진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여기 있는 셈이니까. 뱀파이어의 서사는 온통 그러한 공포로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바로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차원의 넘나듦에 관한 문제가 끼어있다.
우리들 인간이 세계라는 것을 인식할 때 발생하고 있는 차원의 개념들 말이다. 이러한 차원의 뒤섞임은 냉정히 말하면 ‘악’ 자체가 지니기보다는 세계가 지니고 있는 문제이다. 그렇게 바라보면, 차원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문제 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과 ‘영화’의 작동이 지니고 있는 인접성, 바로 그가 우리의 관심사이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