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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의 역사를 통해서 보는 영화란 무엇인가?

by 북페스트 2026. 5. 24.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나는 막연히 어떤 리스트를 상상했다. 역대 최고의 영화 100선, 또는 시대별로 정리된 걸작들의 연대기. 『영화의 역사』라는 제목이 주는 인상이 그랬다. 그런데 책을 펼친 순간부터 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책은 영화작품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 자체의 이야기였다.

김성태는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영화학자다. 12년간 프랑스에서 수학하며 자끄 오몽 교수의 지도 아래 장-뤽 고다르를 연구했고, 귀국 후에는 씨네21과 필름2.0 등에 비평을 기고하며, 동시에 〈상류사회〉, 〈이리〉, 〈검은 갈매기〉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서울의 봄〉의 원안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론과 현장을 동시에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25년의 각고 끝에 내놓은 책이 바로 이것이다.

책의 범위는 의외로 좁다. 1894년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로 '움직임'을 최초로 재현한 순간부터, 1927년 첫 유성영화가 탄생하기까지. 무성영화 시대라고 불리는 그 짧은 초기의 역사만을 다룬다. 하지만 그 좁은 시간 안에 저자가 욱여넣은 것들은 방대하다. 기술의 역사, 자본의 역사, 철학의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역사. 영화라는 단 하나의 현상을 이토록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읽어내는 책은 드물다.

기계에서 출발한 것들

이 책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우리의 출발점을 바로잡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말할 때 흔히 작품에서 시작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정적, 알프레드 히치콕의 서스펜스, 펠리니의 환상. 그런데 저자는 이것이 거꾸로 된 순서라고 말한다. 영화는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1894년,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구현한 것은 서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움직임'이었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공장 노동자들이 퇴근하며, 아기가 밥을 먹는 장면. 이야기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움직임 자체가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붙잡아 다시 눈앞으로 돌려놓는다는 것, 그것이 당시 인류에게 얼마나 낯설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는지를 저자는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철학을 빌려 설명한다.

베르그송은 영화적 이미지를 가짜 움직임이라고 불렀다. 정지된 프레임들을 연속으로 보여주어 움직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짜 움직임'이 인간에게 시간을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열어주었다. 들뢰즈는 이를 더 나아가 영화를 사유의 매체로 발전시켰다. 영화는 단순히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 철학적 통찰이 생겨나기 이전에, 영화는 그냥 기계였다는 사실이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와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프는 서로 다른 구조의 기계였고, 그 차이가 영화의 초기 지형을 갈랐다. 예술적 의도 따위는 없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팔릴 수 있는 방식이 살아남았다. 영화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돈이 흐르는 방향으로

이 책의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할리우드의 탄생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할리우드를 영화 예술의 중심지처럼 생각하지만, 저자는 그 탄생이 얼마나 세속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짚어낸다.
20세기 초, 미국의 영화 산업은 에디슨을 중심으로 한 특허 트러스트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특허를 독점하고, 그에 따른 사용료를 걷고, 독립 제작사들을 압박하는 구조였다. 이 압박을 피해 독립 제작사들이 이주한 곳이 대륙 반대편의 로스앤젤레스 외곽, 즉 할리우드였다. 날씨가 좋고, 멕시코 국경이 가까워 단속을 피하기 쉽고, 지가가 쌌다. 예술적 이유가 아니었다. 도피와 비용 절감이 할리우드를 만들었다.

이어지는 1차 세계대전은 영화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꾼다. 유럽의 영화 산업이 전쟁으로 멈춰선 사이, 미국 영화는 세계 시장을 선점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할리우드는 이미 세계 영화 유통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저자는 이것을 영화사의 필연처럼 서술하지 않는다. 자본과 전쟁이라는 외부 조건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했음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니켈로디언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5센트짜리 동전을 내고 들어가는 소규모 상영관이 1905년을 전후해 미국 전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영화의 첫 번째 대중화는 바로 여기서 이루어졌다. 지식인이나 예술 애호가가 아니라, 이민 노동자들과 도시 하층민들이 영화의 첫 번째 주요 관객이었다. 영화는 그들의 피로와 심심함을 달래주는 저렴한 오락이었다. 예술이 될 것이라는 야망 같은 건 없었다.

노동자에서 예술가로

저자가 특별히 공을 들이는 것 중 하나가 감독과 배우의 지위 변화다. 오늘날 우리는 영화감독을 예술가로, 배우를 스타로 자연스럽게 인식한다. 하지만 영화 초기에 이들은 그냥 노동자였다.
촬영 현장을 관리하는 기술 담당자, 카메라 앞에서 지시를 따르는 퍼포머. 그들은 임금을 받는 고용인이었고, 창작자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작사가 영화를 소유했고, 내용과 방식을 결정했다. D.W. 그리피스가 편집의 언어를 발명하고, 찰리 채플린이 슬랩스틱으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고, 버스터 키튼이 중력과 싸우는 몸의 철학을 영상에 담는 동안, 이들은 서서히 단순한 노동자 이상의 존재가 되어갔다.
그리피스의 편집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었다. 시간과 공간을 조작해 관객의 감정을 조율하는 방법을 발명한 것이었다. 채플린과 키튼의 몸은 영화가 처음으로 인간의 내면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과정이 쌓이면서 감독은 기술자에서 작가로, 배우는 퍼포머에서 스타로 서서히 격상되었다. 예술적 지위는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자본의 생태계 속에서 스스로 쟁취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점을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다만 예술이라는 지위를 쟁취했을 뿐이다.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제다. 그리고 그 쟁취의 과정이 얼마나 우연적이고 세속적이며 때로는 치열했는지가 이 책의 내용을 이룬다.

영화사를 다시 쓴다는 것

저자는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에서 12년을 공부하고 돌아와 20여 년을 강단에 서는 동안, 잘못하면 서구의 지식을 해석하고 그에 대해 말하는 꾀꼬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그들의 지식을 습득하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다시 서술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였다.
그 선언은 책의 형식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유려한 문장으로 영화사를 이야기체로 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할 정도로 개념에 집착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한다. 왜 영화사는 작품에서 시작하는가. 왜 감독은 예술가로 불리는가. 왜 우리는 할리우드를 영화의 정점으로 인식하는가.

이창동 감독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영화의 역사를 이처럼 다층적인 시각으로 서술한 책은 한국은 물론 영화를 발명했던 프랑스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썼다. 장훈 감독은 영화창작의 초심을 다시 일깨운다고 했다.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조차 이 책이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과, 읽지 않아도 될 사람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쉽지 않다.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 들뢰즈의 운동-이미지, 미장센과 몽타주의 철학적 함의가 텍스트 곳곳에 배어 있다. 영화를 취미로 즐기는 독자라면 때때로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의 결함은 아니다. 이 책은 영화를 오래 봐왔지만 정작 영화가 무엇인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 없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영화사를 외우는 것과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그것을 이 책은 가장 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증명해 보인다.
영화의 첫 번째 발자국은 예술을 향한 야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눈앞에 재현하려는 기술적 욕망이었고, 5센트짜리 오락이었으며, 전쟁을 틈탄 시장 확장이었다. 그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쌓이고 부딪히며 서서히, 영화는 인간이 시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는 매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가 예술보다 더 위대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김성태 지음, 『영화의 역사』, 2023



 

영화의 역사 | 김성태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사나 영화 서적들은 미학과 연출을 중심으로 작품의 서사를 해석하고 연대별로 분류하는 것에 치우쳐 있다. 이 책은 ‘움직임’에서 역사를 다시 시작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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