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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메소드 연기술의 산파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1889-1937) 이야기

by 북페스트 2024. 5. 15.
 
연기에서, 판을 바꾼 사람, 당연히 스타니스라브스키다.
 
스타니스라브스키의 그 시스템 이전엔 배우들이 무대에서 대사를 '치는 것'이 핵심이었다고 한다. 연기 예술(!)의 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스나티스라브스키가 이끌었던 모스크바 예술극장(Moscow Art Theatre) 의 몇 차례 미국 순회공연과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리처드 불레스라브스키(Richard Boleslavsk)가 그의 책 ‘Acting-The first six lessons’, 그러니까 이 번에 출간하는 <연기6강> 을 통해 스타니슬라브스키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부터 큰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 마디로 판이 바뀐다는 것.
볼레스라브스키의 이력은 재밌다. 러시아 제국 시절의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짜르 기병학교를 졸업했다. 1904년에 오데사에서 첫 무대에 섰고 1906년 스나티스라브스키의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 들어가게 된다. 1909년에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스나티스라브스키의 방식으로 배우들을 가르치게 된다.
1차대전 중에서는 짜르 편에서 싸웠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고향 폴란드로 돌아와서는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폴란드의 대 러시아 전쟁에서 기념비적인 전투를 다룬 다큐를 만들었다. 1922년에는 독일의 그 유명한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영화 '러브 어게인'에도 출현을 했으니...
1922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는데 이 순간이 바로 메소드의 시작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3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미국 순회 공연에 합류하면서 배우이자 스타니스라브스키의 조수로 다시 합류한다. 스타니스라브스키 방식을 전수하면서 뉴욕시에 미국 극장 연구소("The Lab")의 공동설립자가 된다. 연구소를 통해, 볼레스라브스키는 스타니스라브스키 방식을 본격적으로 미국에 소개한다. 해롤드 클러먼, 리 스트라스버그, 스텔라 아들러, 존 가필드와 같은 많은 졸업생들 지도하고 이들은 이후 바로 그 메소드를 탄생시킨다.
1929년엔 헐리우드로 가서 영화감독이 된다. 30년대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함께 대단한 흥행작들을 만들어내지만(그레타 가브로의 '페인티드 베일'이 그의 감독작) 47세 생일을 몇 일 남기고 1937년 갑작스런 심장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헐리우드 대로의 명예의 거리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다.